시선과 영향

노약자석 없애보자

푸리아에 2004. 5. 19. 02:47

솔직히 말해서 지하철 노약자석은 자원 낭비라는게 내 생각이다.

저런식으로 강압적인 제약이라도 해서 자리를 양보(?) 받아야겠다면 뭐 어쩔수 없겠지.하지만 그 전에 자리 양보 라는 '예절'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예(禮)라는건 나이가 적은 사람이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 행 하는 행동이 아니라 나이의 많고 적음을 떠나 상대방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문화행동이다.

따라서, 노약자석 뿐만 아니라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과 자리앞에 서 있는 사람이 서로를 배려한다면 저런것은 있을 필요가 없는거다.


그럼 노약자석은 왜 생긴것일까?
동방예의지국이라 일컬어 진 이 대한민국에서 말이다.

내 단편적인 기억들로는 사람들간의 배려가 줄어들면서 부터인것 같다.

[유형 1]

아침 8시에 학교가서 밤 9시 10시에 학교 끝나고 집에 돌아가기 위해 지하철을 탔다가 자리가 있어 잠깐 앉아있다 졸아버린 한 학생은 한 어르신의 손바닥으로 뒷통수를 강타 당한다.

어른이 앞에 있는데 자리 양보 안한다고 ..

[유형 2]

별로 피곤하지 않아보이는 한 젊은이가 지하철 의자에 앉아 어디론가 가고 있다.

연세가 많으신 어른이 지하철에 타는걸 보자마자 재빨리 자는척을 한다.

어르신은 자리에 앉아있는 젊은이가 자고 있지 않다는걸 알고 있지만 불편한 마음을 숨기고 계속 서서 간다.

[유형 3]

지하철을 탔는데 남는 자리가 하나있어 의자에 앉아있던 젊은이는 한 어르신이 타시는걸 보고 자리를 양보했다.

어르신은 아무말 없이 당연한듯 그 자리에 앉는다.

젊은이는 아무런 사심없이 기꺼이 자리를 양보했지만 왠지 씁쓸한 기분이 든다.

"그저 고맙다는 말 한마디 하는게 그리도 어려운가?" 라는 생각이 들면서 말이다.


3개의 유형은 내가 직접 겪기도 하고 보기도 한 것들이다.

저 유형들의 공통점은 배려가 없다는것이다.


졸고있는 학생을 보며 일어나라고 때리기보다 공부하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라고 생각한다면,

연세가 많은 분이나 임산부나 어린아이를 보고 재빨리 자리를 양보한다면,

자리를 양보받은 사람은 웃으며 빈말이라도 고맙다는 말 한마디를 해준다면,

지금의 노약자석은 있을 필요가 없는거다.

노약자석을 만들어 구석에 노약자를 몰아놓는것 보다 올바른 교육과 캠페인을 해서 서로간의 배려를 생각할 수 있게하는 정부 정책을 내 놔줬더라면

가슴 한구석 씁쓸해지는 껍데기뿐인 예(禮)를 지키는 일은 없었을텐데 ..

예(禮)는 구속이 아닌 마음에서 우러난 행동일 때 아름다운 것이다.

지금이라도 예(禮)에 관련된 정부캠페인을 벌여보는건 어떨까.

아니면 블로그 캠페인이라도 벌여서 사람들이 자진해서 지켜나가도록 하는것도 나쁘지 않을테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