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낙서/웃기는 비극

한밤의 프로젝트

푸리아에 2005. 6. 2. 14:44

어젯밤의 일이었습니다.

방안에서 웹서핑을 하며 킬킬 거리던 푸리아에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더랬지요.


"도련님~!! 도련님~!!!!!!"

형수님의 4옥타브를 넘나드는 다급한 목소리였습니다.


무슨일일까 궁금해졌습니다.

다리다친 푸리아에에게 밤늦게 꼬리곰탕 만들어주시겠다고  하시다가 주무시는 바람에

냄비 홀랑 태우고 집까지 태워버릴뻔했던 일 이후로 형수님의 다급한 목소리는 처음 듣습니다.


잽싸게 대답하고 형수님이 계신곳으로 다리 질질 끌면서 갔지요.

"도련님~! 집에 쥐가 들어왔어요~!! 어떡해~ 어떡해~ 쇼파밑으로 들어갔어요~"


훗. 겨우 쥐따위에 저렇게 호들갑을 떠시는 형수님이 귀여워 보입니다.

라고 대답할 수 있었어야 터프가이 푸리아에의 이미지에 걸맞겠지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푸리아에의 유일한 아킬레스건은 '쥐' 입니다.

어째서 터프가이 푸리아에가 쥐를 무서워 하게 된 것인지 짚어보지 않을수가 없군요.


시간은 바야흐로 1983년 어느 가을날 장소는 인천 송림동 이었지요.


그무렵 전 동네에서 침 좀 뱉는 잘나가는 일곱살 이었습니다.

전 얼마 안되는 제 친구들과 쭈루룩 남의 집 담벼락 밑에 앉아서 석양의 빛을 온몸으로 받으며 광합성 놀이를 하고 있었더랬지요.

따뜻하다못해 노곤하기까지 했던 제가 보고 있던 풍경은 초등학교에 다니던 동네 형들이 즐겁게 욕을 하며 뛰어 놀고 있는 평화로운 분위기 였습니다.

그때, 동네 형들 중 한명이 어디론가 급히 가고 있던 쥐를 발견하고 소리쳤습니다.


"씨발~ 쥐다~!!!!!"


예나 지금이나 제일 무서운건 초딩입니다.

쥐를 발견했다는 제보를 받은 동네 형들은 사냥감을 발견한 고양이 같이 쥐를 쫓기 시작했습니다.

필사적으로 도망가는 쥐. 어떻게든 잡아보겠다고 용을 쓰며 뛰어가는 동네형들.


5분후 .. 그 상황이 역전되리라고 그들이 미리 알았더라면 그렇게 용감할 수 있었을까요.


길가에 있던 하수구 구멍을 발견하고 들어가려던 쥐의 꼬리를 어떤 형이 밟았습니다.

쥐는 들어가려고 발버둥 치고 있고 그 형은 이제 다 잡은거나 마찬가지라며 의기 양양해 했습니다.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 라는 속담을 만든 사람은 분명 쥐를 궁지에 몰다가 물린 어떤 초딩일거라 확신합니다.


쥐는 다급했는지 자신의 꼬리를 밟고 있던 발을 물려고 이빨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의외의 반항에 당황한 형은 밟고 있던 꼬리를 놓았는데 기세가 역전된 상황을 쥐는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분노의 폭발을 시작했지요.


쥐가 사람을 쫓아다니기 시작한겁니다.

'한놈만 걸려라. 잘근잘근 씹어줄테니.' 라고 생각한듯이 괴상한 소리를 내며 쫓아다녔습니다.


평화롭던 분위기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아비규환의 현장이 되어 다들 울고 소리치며 도망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쥐의 분노는 마침내 한쪽 구석에서 아랑곳없이 광합성 놀이를 하고 있던 저에게로  향했습니다.

눈은 새빨갛고 덩치는 새끼 고양이 만한 쥐가 이빨을 드러내고 맹렬히 달려올 때,

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재빠르게 남의 집 담벼락으로 몸을 날려 매달렸습니다. -_-;


만약, 그 쥐가 높이 뛰기에 소질이 있었더라면 전 쥐에게 물려 마우스맨 으로 변했을지도 모르겠지만 다행히도 쥐는 다른 골목으로 달려가다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그 이후로 전 쥐가 세상에서 제일 무섭습니다.

저도 김제동씨처럼 "톰과 제리" 할 때 주먹 불끈 쥐고 톰을 응원할 수 밖에 없었던 아픈 추억이 있던것입니다.


하지만, 전 형수님에게 약한 모습을 보일 수 가 없었습니다.

한손엔 빗자루, 한손엔 쓰레받기를 들고 형수님이 소리내서 쥐를 몰면 제가 잡기로 했습니다.


작전대로 진행되어 갔습니다. 형수님은 괴성을 지르며 쇼파를 발로 차기 시작했습니다.

쥐가 보입니다.


터프가이 푸리아에 .. 과감히 소리를 지릅니다.


"꾸어어억~!!! 쥐다~~~~~~!!!!"

다리가 아픈것도 잊고 안다쳤을 때 보다 빠르게 도망쳤습니다. -_-;


쥐는 여기저기 계속 도망다녔습니다.

푸리아에와 형수님도 여기저기 계속 도망쳐 다니면서 소리질렀습니다.


"꾸어어억~~!! 쥐다아아 오지마아아으아아으아으아으아아아아~~!!!"


잠시후, 쥐는 집안 어디론가 사라졌고 형수님은 푸리아에에게 공격을 했습니다.

"도련님 믿고 잡을려고 했는데 그렇게 도망치면 어떡해요! 난 도련님이 그렇게 쥐를 무서워 하는줄 몰랐네~!!!"


민망했습니다. 부끄러웠어요.


하지만, 저의 어릴적 공포경험을 알지 못하는 형수님에게 약간의 원망스러움이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참지 못하고 말씀드렸습니다.


"정말 무서웠어요 ㅠ_ㅠ"


결국, 쥐는 쥐대로 잡지 못하고 이미지만 실추된 채 한밤의 쥐잡기 프로젝트는 막을 내렸습니다.


근데, 이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쥐는 아직 이 집 어딘가 살고 있을텐데요 ..

얼른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 뿐입니다. 흑.


p.s : 오늘부터 터프가이 라는 수식어는 버리도록 하겠습니다.

        대신, 섹시핸섬가이를 사용하겠사오니 앞으로 많은 애용 부탁드립니다.